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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예수를 따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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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성자 순복음부천교회 작성일등록일 2019-03-15 조회조회수 695회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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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예수를 따르다 (2)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통치에 더해 이방인인 에돔 족속의 왕까지 나서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었다. 그 옛날 조상들이 겪었던 애굽의 노예생활이 되풀이되는 상황이었다. 유대인들은 한 마음으로 모세와 같은 영도자, 곧 메시아를 대망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부글부글 끓는 기름가마 같았다. 누군가 작은 불씨만 던져도 순식간에 폭발할 지경이었다. 특히 유월절 같은 큰 명절에는 성전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 전역은 물론 이방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디아스포라들로 예루살렘이 초만원이 되곤 했는데, 이러한 시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때마다 로마군은 내심 두려움에 떨며 초긴장 상태가 됐다. 총독들은 이 시기를 대비해 황제에게 병력지원을 간청하곤 했지만 본토 사정도 신통치 않은 모양인지 번번이 거절됐다.

 

로마의 지배 이전 일이긴 하지만 시리아(수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식민통치 때 일어난 마카베오 봉기도 사소한 사건이 불씨가 되어 대항쟁으로 타올랐다. 시리아의 잔인한 통치자 에피파네스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극심하게 수탈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혹한 세금 추징과 매관매직이 횡행했는데, 대제사장직까지 매매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 시리아의 학대와 수탈보다 더 참기 어려웠던 것은 성전을 드나드는 이방신상(제우스신상)과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돼지떼였다. 온 이스라엘이 분노로 치를 떨던 그 무렵, 주전 167년에 예루살렘 북쪽 30Km 거리의 작은 마을 모데인에서 하스몬 가문의 늙은 제사장 맛다디아가 제사 과정에서 왕의 관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이 불씨가 되자 순식간에 이스라엘 전체가 독립전쟁에 휩싸였다. 그리고 마침내 봉기 25년 만인 주전 142, 시리아를 축출하고 독립국가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구레뇨(퀴레니오스) 총독 치세 때인 주후 7년경엔 갈릴리 유다가 갈릴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드다가 메시아를 참칭하며 400인의 무리를 이끌다가 로마군에 의해 효수되기도 했다.

암울한 현실에 지친 백성들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때마다 그 뒤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메시아는 다윗왕과 같이 이 땅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힘과 능력을 갖춘 메시아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이 땅의 세상살이를 위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시몬과 안드레도 다를 바 없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시몬은 안드레에게 이끌려 예수께 갔다가 새 이름을 받았다. 게바는 반석이란 의미의 아람어고, 헬라어로는 페트로스, 곧 베드로다. 이스라엘에서 이름을 수여받는다는 건 그가 이름을 주는 자의 소유가 됐다는 의미였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 일이 그런 의미였다. 아브람은 아브라함,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하나님께 받았다. 자기 이름으로 살던 자가 하나님에 의해 이름이 바뀌면 그는 자기 것이 아니라 이름을 주신 이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시몬은 베드로가 됨으로써 성육신 하신 예수의 소유가 됐다. 이러한 일들은 구원을 설명하는 일이며, 이 일들의 결론은 요한계시록에서 밝히 드러난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4:1)’

구원받는 성도는 자기 이름을 뺏기고 어린 양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얻게 된다. 그래서 성도의 이름은 모두 그리스도인이다. 바벨탑을 쌓던 자들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다. 구속의 은혜를 받지 못한 인간들은 모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산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단순히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해 살던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다. 이는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된 자가 피조물이라는 원래 자리로 내려오고, 하나님을 자신의 참된 창조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부르다의 히브리어 카라선포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단순히 주의 이름을 말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고 구세주라는 것을 바르게 깨닫고 선포하는 것이 부르다의 의미다. 또한 이름은 히브리어로 이라고 하며, 파자(破字)하면 구별된 말씀, 연마된 말씀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이름이 곧 말씀이다. 이름을 주는 것은 곧 말씀을 주는 일이며, ‘내가 이른 말이 영이고 생명이라고 하신 것처럼 성령을 받는 일이고, 생명을 얻는 일인 것이다.

게바는 다른 제자는 제쳐두고 자기에게만 새 이름을 주신 것에 대해 의아해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반석이란 의미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여정에서 기갈이 들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가 호렙산 반석을 쳐 물을 내어 구원하지 않았던가. , 선지자 사무엘의 때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한 후 돌을 취해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에벤에셀, 곧 도움의 반석이라고 부른 일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해변에 배를 대고 내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게바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를 뒤따랐다. '버려두고'의 헬라어 아피에미는 '내버려두다는 뜻과 함께 '법적 속박에서 벗어나다’ ‘(, 의무, 처벌로부터)용서하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제자들이 그물을 버렸다는 건 그물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풀려나 자유로워졌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제자들이 생계의 수단인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린다는 걸 가르쳐주는 일이다. 예수를 믿을 때 생계와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의 한계와 무가치성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보이는 소망 때문에 예수를 버리고 떠나는 쪽이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19:29)’

이 말씀을 오해하면 신부 수녀가 되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거나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마음으로 버리라는 것이다. 그 가족 관계나 전토, 재산은 이 땅에서 잠시 허락된 것일 뿐 진짜 내 가족, 내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영원히 함께 할 천국 가족이 진짜 가족이다. 이 세상 것들은 모두 천국과 구원을 설명하는 교구재다. 진짜 생명은 예수 안에만 있다. 예수님이 가짜 생명에 붙들려 있던 제자들을 부르시고, 따라오라고 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주시기 이전에는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던지다는 헬라어 발로의지하다는 뜻도 있다. 저주의 바다에서 그물에 의지하고 있던 죄인들을 말씀으로 자유로이 풀려나게 하는 구원의 양상이 이 한 장면에 함축되어 있다.

주를 따르면서 게바는 찰랑이는 파도소리 속에서 그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묘한 울림으로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권위도 느꼈던 것 같다. 게바는 얼핏 엘리야를 따르기 위해 한 겨리의 소를 잡은 엘리사가 떠올랐다.

배와 그물을 태워야 하나?’

게바는 쓸 데 없는 생각이라고 자책하듯 제 머리를 두어 차례 두드렸다.

엘리사는 열 두 겨리 중에 한 겨리를 잡았을 뿐이니까...’

 

나를 따라 오라(듀테 오피스 무).”

이 말씀은 훗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한 번 동일하게 게바에게 주어졌다. 게바가 요한의 장래를 궁금해 할 때 예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하더라도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오라(듀테)'와서 보라(28:6 4:29), 와서 먹으라"(21:12), 나아와 상속하라(25:34), 와서 모여라"(19:17)에서 보듯 천국과 구원으로 부르시는 구세주의 초청의 말씀이다.

나를 따르라(오피소 무)’는 단순히 걸음을 뒤쫓는 것이 아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피소 무)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일이며,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죽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일이다. 흔히 예수를 본받는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성도가 본받아야 할 예수의 본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주님의 말씀에 게바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기 낚는 어부인 게바 형제들을 빗댄 재미있는 표현이면서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말씀이었다. 그뿐 아니라 땅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레츠는 파자하면 하나님이 낚기 시작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박국이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인간들을 물고기처럼 편만하게 펼쳐놓으셨다. 땅은, 거기에서 당신이 구원할 자를 낚아 올리는 무대 같은 곳이다. 구원은 저주의 바다에서 낚여올려지는 것이다. 죽어서 다시 사는 것이다. 이중 삼중의 의미를 담은 이 말씀에 게바는 신선한 바닷바람을 쐬듯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앞서 가시던 주님이 세베대와 그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함께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부르셨다.

나를 따라 오라.”

말씀을 듣자 야고보와 요한은 게바와 안드레처럼 즉시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나섰다.(1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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